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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은 늘 바다를 '라 마르(La mar)'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바다를 정겹게 부를 때 쓰는 스페인어였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가끔은 바다를 욕하지만, 그럴 때에도 바다가 여성인 것처럼 말하곤 했다. 젊은 어부들 중에서 낚시찌 대신 부표를 사용하고 상어 간으로 돈을 많이 벌어 모터보트를 사들인 치들은 바다를 '엘 마르(el mar)'라며 남성으로 취급했다. 이들은 바다를 경쟁 대상이나 일터, 심지어는 적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나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하며 큰 호의를 베풀었거나 베풀어 주지 않는 존재로 여겼다. 바다가 거칠게 굴거나 성나게 날뛰어도 그것은 바다도 어쩔 수 없어 그러는 것이다. 달이 여성에게 영향을 미치듯 바다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려니,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대단한 놈이로군."
노인이 말했다.
"이제는 미끼를 옆으로 물고 달아날 모양인데."
놈이 한 번 돌고 나서 미끼를 삼킬 테지, 하고 노인이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좋은 일이 입 밖으로 새어 나가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가 있으면 정말 좋겠는데, 나를 도와주고 이 근사한 장면도 구경할 수 있을 테고 말이야."
늙으면 혼자 있는 것이 썩 좋지 않아,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인걸. 이제는 더욱 힘을 낼 수 있도록 다랑어가 더 상하기 전에 먹어 둬야 해. 잊지 말고, 아무리 먹기 싫더라도 아침에는 저 다랑어를 꼭 먹어야 해. 기억하자, 노인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번이 첫 여행이냐?"
노인이 말하자, 새는 노인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새는 너무 지쳐서 낚싯줄을 미처 살피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냘픈 발로 줄을 꽉 잡고 물고기가 움직이는 힘에 따라 위아래로 기우뚱거렸다.
"줄은 튼튼하단다."
노인이 새를 보며 말했다.
"아주 튼튼해. 간밤에는 바람도 별로 없었는데 그렇게 지치다니. 너처럼 가냘픈 새들은 결국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조금 있으면 매가 새들을 찾아 바다로 날아오겠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말을 새에게 직접 하지는 않았다. 해 봐야 알아듣지도 못할 테고, 또 얼마 안 있어 그 새도 주변에 매가 있음을 알게 될 테니까.
"푹 쉬어라, 작은 새야."
노인은 말했다.
"그리고 어디든 열심히 날아가서 사람이나 새나 물고기처럼, 되든 안 되든 모험을 한번 해 보렴."
"그동안 아이에게 내가 이상한 노인이라고 말하곤 했었지. 지금이야말로 그 말을 증명할 때다."
그는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수천 번이나 그것을 증명했지만, 지금와서는 그게 다 무의미한 것 같았다. 그래서 노인은 지금 또다시 새롭게 증명해 보이려는 것이다. 증명은 늘 처음 하는 일 같았고, 그럴 때 과거의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노인은 바람에 손을 말린 다음, 그 손으로 다시 줄을 잡고는 될 수 있는 대로 몸을 편한 자세로 하려고 애썼다. 그는 뱃전에 몸을 기대어 이물 쪽으로 젖혀서 그냥 줄을 잡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배가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도록, 즉 고기가 끌기 힘들도록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렇게 해서 또 새로운 방법을 하나 배우는구나. 어떻게든지 상황에 따라 써먹을 수 있는 방도가 생기게 마련이지,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어려운 것은 잘 모른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해나 달이나 별을 죽일 필요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저 바다에 살면서, 우리의 참다운 형제를 죽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 노인의 머리는 맑았다. 상어를 보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희망은 거의 없어 보였다.
"좋은 일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 법이야."
노인은 더 이상 그 큰 물고기를 보고 싶지 않았다. 물고기가 뜯길 때 노인은 마치 자신의 살점이 뜯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물고기를 물어뜯은 상어를 내가 죽였어, 노인은 생각했다. 그놈은 내가 본 중에서 가장 큰 마코상어야. 사실 나는 큰 놈들을 많이 보았지.
이렇듯 엄청한 행운이 오래갈 리가 있나, 노인은 생각했다. 온 힘을 다 쏟아 부어 물고기를 낚은 일조차 꿈이었으면 좋겠다. 신문지를 깔고 침대에 혼자 누워 있는 편이 더 좋을 텐데.
"인간은 패배하는 존재로 만들어진 게 아니야."
노인은 말했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하지는 않지."
물고기를 죽인 것이 좀 후회스럽군, 노인은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더 큰 시련이 닥쳐올 텐데, 나에게는 작살마저 없으니.
나는 죄가 뭔지 잘 모르겠고 또 그런 게 있다고 믿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아. 그렇더라도 아마 그 물고기를 죽인 것은 죄가 될 거야. 내가 살기 위해서, 또 여러 사람에게 먹이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죄야. 하지만 그렇다면 무엇이든 죄가 아닌 게 없을 테지. 아무튼 지금은 죄를 생각하지 말자.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어. 그리고 돈을 받고 죄에 대해 생각해 주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이나 죄에 대해 실컷 생각하라지. 물고기가 물고기로 태어난 것처럼 나는 어부가 되려고 태어난 거야. 성 베드로도 디마지오의 아버지도 한때 어부였어.
너는 다만 살기 위해서라든지 팔기 위해서 물고기를 죽인 것은 아니다. 긍지를 위해서, 또 어부이기 때문에 물고기를 죽인 것이다. 너는 물고기가 살아 있을 때도 사랑했고, 죽은 뒤에도 역시 사랑했다. 만약 진정 고기를 사랑한다면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야. 아니, 오히려 죄보다 더한 것이 되는 걸까?
가지고 왔어야 했던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군, 다른 것들도 모두 가지고 나왔어야 했어,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늙은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 뭣해. 자네는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지금은 없는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야.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라고.
"싸우는 거야."
노인은 말했다.
"죽을 때까지 싸울 거야."
노인은 자신이 마침내 구제될 길 없이 완전히 패배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배의 뱃고물로 돌아가 톱니처럼 들쭉날쭉 부러진 키 손잡이 끝을 살폈다. 손잡이는 배의 방향을 조종할 수 있을 만큼 키 구멍에 잘 맞혀져 있었다. 노인은 어깨에 부대를 두르고 배의 방향을 바로잡았다. 이제 배는 아주 가볍게 나아갔다. 노인은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었다. 이제 모든 것은 다 지나가 버렸다. 노인은 어서 빨리 모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솜씨 있게, 기민하게 배를 몰고 갔다. 잠시 후에 상어 떼가 식탁에 남은 찌꺼기를 주우려는 사람처럼 고기의 잔해를 향해 덤벼들었으나 노인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키를 잡는 일 외에는 이제 모든 일에 무관심했다. 무거운 짐이 없으므로 배가 아주 가볍게 잘 달린다고 느낄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지친 것일까. 노인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바다에서 겪은 일이 꿈만 같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단지 내가 너무 멀리 나갔기 때문이야."
유시민씨가 독서를 권장하면서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고전들도 그 당시에는 재밋어 못 견딜 작품이었다는 점을 짚어 줬던 게 떠오른다. 흘러간 시간이 스며들어 일견 남루해보일 뿐. 글이 다 그런 거 같다. 언어는 고정, 모든 문장은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 과거에 귀속된다. 하여 세월에 시의성을 소실한 소설을 읽어 내리는 행위가 그리 달달하지만은 않다. 나는 오늘을 사는데, 특히 고전은 현재와의 맥락을 친절하게 짚어주지 않는다.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어쩌다 한 번씩 한 시대를 풍미한 소설을 읽을 일이 생기면 나는 자연스레 타이밍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는 분명 한 시대를 진동시킨 울림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런 건 시간에 풍화되지 않는다. 개중에 어떤 조각들은 시대를 넘어 지금의 나에게도 유효한 의미로 다가 올 수 있다. 작품과 공명할 수 있는가 여부는 온전히 그날의 나에 달렸다. 한 위대한 정신이 피를 토해내듯 써내린 문장을 소화해내려면 마찬가지로 사람 한 명이 갈려 들어가는 듯한 집중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 만큼 나는 지식으로든 마음가짐으로든 준비가 충분한 상태인가. 같은 잡생각.
노인이 바다에서 낚시하다 죽을 고생한 이야기. 간결한 서사 구조에 문체도 직선. 허나 문해가 분방하다. 여러 상징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보고 있자니 한 권의 책이 저마다의 시선에 따라 다시 천 권, 만 권으로 분열되는 장면이 보이는 듯하다. 저자의 의도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틀만 갖춰 놓은 속이 빈 이야기의 성긴 얼개 사이로 필요 이상의 의미를 채워 넣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시험을 위한 문학에 익숙한 우리가 관성적으로 상징에 대한 해석에 과도한 집착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대표 작품해설에 쓰여있듯이 저자가 쿠바의 어촌에서 접한 한 늙은 어부의 경이로운 조업에 대한 인상을 담백하게 담아 논 단순함이 전부일수도.
글을 읽을 때 장치나 상징을 깊이 생각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액면 그대로의 이야기를 경험과 상황에 맞춰 즉흥적인 인상을 수집하는 쪽에 가깝다. 그간 작품에 대해 제대로 의견을 나눌 타인이 없어서였을까,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같은 작품을 나와는 다른 시선으로 접근하는 사람들과 좋은 기회가 되어 교류하게 됐다. 각자의 청새치와, 사자, 상어가 약동하는 흥미로운 시간. 의견을 나누다 보니 나도 마음 속에 자신만의 노인과 바다 한 권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됐다. 혼자서는 여기까지 생각을 가져오지 못했을 거다.
감당하기 버거운 크기의 청새치에 매달려 위험하게도 며칠 동안 먼 바다로 끌려간 걸 현명하다고 할 순 없겠지. 현실적으로 접근한다면 잘못된 결정이겠지만 평생을 어업에 종사해온 노인이 나같은 문외한도 짐작 가능한 수지타산이 안됐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선택의 기로에서 노인은 결정을 내렸고, 경이적인 집중력과 끈기로 끝내 청새치를 굴복시킨다. 사실 노인에게 물린 물고기를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고 본다. 자신의 업을 그토록 진중한 태도로 수행해오던 노인이 인생에 남을 대어가 물린 상황에서 꼬리를 말고 도망친다는 건 여러모로 개연성이 부족하다. 자기라는 맥락은 상황 앞에 자주 무기력해진다. 항상성으로, 그대로 살아갈 도리밖에. 과거가 행동의 당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생의 사건들은 대개 그저 발화한다. 큰 이유 없이.
메타포로서 청새치를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사건/현상' 내지는 '성취/이익' 등으로 치환하면 상어는 현상에 붙는 다양한 부스러기들로 여겨볼 수 있을 것이다. 먼 바다에서, 포식자에게는 너무도 매혹적인 피를 뿜어내는 청새치를 끌고, 기운빠진 무력한 노인이 작은 낚시배를 끌고 항구로 돌아가는 길이라면 온갖 상어들이 꼬여 수확물을 잃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떤 상어는 노인이 감당할만한 시련이었지만 어떤 상어는 결국 노인을 패배하게 만든다. 그 차이였다. 여기에 옳고 그름, 호 불호, 참 거짓, 바름과 부도덕, 자격 따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겨울내 추운 것에, 여름날 꿉꿉한 장마에 불평불만을 늘어놔 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다. 자연현상에는 감정을 섞을 수록 마음을 다칠뿐이다. 그렇고 그런 것은 그렇고 그렇다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어쩌면 이 소설은 별다른 기교없이 자연의 섭리를 정직하게 담아 놔 이 오랜시간 해석이 분분한 작품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프리카와 사자는 노인에게 이상향으로 보여진다. 평생 접해 본 생물 중 가장 아름다운 크리쳐가 아니었을까. 그 강렬한 인상에 노년의 꿈속까지 부유하는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으로. 단지 한 순간의 우아한 이미지로 한 사람에게 평생 회상되는 불멸의 지위를 갖게 된다는 건 왠지 불공평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겠어.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 외양의 매력이란 게 이토록 직관적다. 무시할 순 없지만 그게 전부인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만 너무 멀리 나갔던 거야. 뭐, 그정도인 거니까 너무 큰 의미를 찾지 말기를. 수만 가지 길로 부질없는 혼자만의 정리를 그만두길 당부해본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 버렸다. 항구에 돌아갈 때다.
* 이 포스트는 비영리적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나 저작권 문제가 있을 시 연락 주시면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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